10/03/2018

[리뷰] 소액다컴 선정자 X-PRESS SEOUL 리뷰_연약하지만 분명한 면


소액다컴 선정자 X-PRESS SEOUL 리뷰
 
연약하지만 분명한 면

 
경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선과 선이 만나는 경계, 삼 면이 마주 닿는 공간의 모서리.
-모서리 이미지를 수집하는 실비의 메모

매거진 <엑스프레스 서울>의 지면
<엑스프레스 (X-Press)>는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의 주인공 실비와 제롬의 소비와 취향, 젊음과 욕망을 대변하는 잡지다. 페렉의 소설 속 배경이 포스트모더니즘 혁명의 시기로 많이 다뤄지는 1960년대의 프랑스라면, ‘팀 엑스프레스가 만든 잡지 <엑스프레스 서울(X-Press Seoul)>2018년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표방하며, 이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사물들을 제시한다.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준 흔들의자, 기다리는 법을 배운 필름 카메라, 여행에서의 여유가 새겨진 백팩 등 사적인 사연이 지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이러한 사물들의 이미지는 그래픽 효과나 콜라주 기법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편집되었다. 차곡차곡 번호를 매겨 아카이브의 성질을 드러낸 물건도 있다.
하지만 페렉의 소설 속 <엑스프레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오히려 욕망, 소비 지향, 사치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사물의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가늠케 하는 솔직한 문장과 불안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은 기록들. 이들은 <사물들>의 실비와 제롬이 탐독하며 현대소비사회를 욕망하던 잡지가 아닌, 삶의 고민을 표상하는 실비의 초상을 싣기로 선택했다. 현실과 타협을 덜 하기 위해 다른 기술을 배워보며, 순간을 수집하고, 지루한 업무 속에서 취향을 확장하는 방법을 찾는다. 또한, 이 모든 걸 쉽게 갖출 수 있을 것처럼 유혹하는 주변에 아슬아슬하지만 곧은 선을 긋고, 자신을 대변하는 사물들을 정성 들여 사유하는 행위로 일상을 지켜나간다.
면과 면 사이 1
팀 엑스프레스는 이 얇은 잡지를 전시 공간으로 입체화한다. 잡지 표지에 그려진 위, 아래로 살짝 어긋난 두 개의 직육면체는 위에서 내려 본 1점 투시의 정육면체를 반으로 쪼갠 듯한 형상인데, 이는 각각 전시 공간에 구현한현실의 방이상의 방을 의미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두 방의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반투명한 비닐 막으로 제작한 사각형의 면면에 사물들의 그림자가 아스라이 비친다. 비닐 막의 이음새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소재 특유의 유동성이 느껴진다. 모서리를 돌면 그림자의 아우라는 사라지고 현실의 방이 나타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관람객이 된다.
현실의 측면
방에 놓인 빈티지 스타일 조명과 하얀 철제 옷걸이, 싱글 사이즈 침대와 책상, MDF로 만든 책장은 이케아와 무인양품 냄새가 섞인 누군가의 작은 원룸을 상기시킨다. 실비의 사물들인 수경 야자, 조개껍질, 이로시주쿠 잉크, 블루 계열의 무지 셔츠 등은 가구와 소품에 어울리도록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반면 어떤 실비의 사물들은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실제 고양이 크기의 모형 판넬, 남산 타워 이미지를 콜라주한 입방체, 만두를 술에 재운 그로테스크한 술병, 노란 마스크에 붙은 솜 덩어리가 곳곳에 놓여 현실적인 방 재현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 좌절감, 서울이 아닌 고향을 향한 노스텔지아가 짙게 느껴진다. 이렇듯 물건과 물건 사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마찰과 이질성은 이름만 모두 실비일 뿐 실상 개별적인 각자의 존재 이유로 이 방에 초대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면과 면 사이 2
팀 엑스프레스의 멤버들은 대부분 졸업예정자이거나 이제 막 졸업한 상태였다. 이들이 일상을 사는-혹은 버티는- 방법 중 학생과 사회인 그 중간에 서 있기를 제안한 이유는 어쩌면 문화, 예술계 내에서 통째로 매립되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의 방법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상의 측면
이상의 방은 하늘거리는 하얀 리넨위에 에메랄드빛 웨이브가 파란 네온과 함께 투사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획자의 말에 따르면, 도달할 수 없는 거리감과 만질 수 없는 상태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실체 없음에 가까운 저 환한 빛을 희망이라고 여기긴 어렵다.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는 상태가 실패와 분노로 바로 치환되지 않도록, 수긍과 체념을 쉴 새 없이 오가며 반짝거리는 물결을 만들었을 양가적 시선이 느껴진다. 이상의 방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현실과 이상이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고 어긋나 분리되어 버리는 찰나를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현실일까?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꿈일까.
관람객은 모호한 이상의 방에서 빠져나와 전시장 출구로 나가기 전 현실의 방을 다시 지나쳐야 한다. 사물들은 연약하지만 분명하게 묻는다. 당신을 꿈꾸게 하는 사물은 무엇입니까. 어느새 관람객의 이름은 또 다른 실비가 된다.

프로젝트 명: X-PRESS SEOUL
참여작가/팀명: TEAM X-PRESS, 이지산
일시: 2018831~ 99(오프닝 316)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B1 다목적실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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