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2019

[리뷰] 무이네인 듯하다_퍼블릭아트 2019 3월호

<사막요정>
-하나투어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인 듯하다.


어떤 동기로 이들이 베트남 남부 지역의 소도시 무이네(Mui Ne)에 갔는지는 모른다. 전시명 <사막, 요정, >은 이들이 그곳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 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방문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들의 여행기를 대언(代言)하진 않는다. 전시장 내 동선 또한 특별히 유도하는 좌표가 없기에, 작품 사이의 유기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작품 간 긴밀하지 않은 성질 덕분에 무이네의 장소성은 정돈되지 않고, 여행의 질감을 다양하게 살리며, 오히려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관성을 허물어뜨린다.
 
우선 김경호는 베트남의 역사와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무이네를 거점으로 삼는다. 3D 프린트로 제작한 불상, 돌고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은 전리품을 연상시키며, VR 작업 <멀미>는 이 상징물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혁명, 전쟁의 흔적을 무이네의 사막 위에 모래 폭풍처럼 늘어놓았다. ARTINA도 무이네보다는 베트남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으로 제작한 지도, 맵핑, 사운드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반면 작가의 여정에서 비롯한 환상에 초점을 둔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가이드의 시점으로 쓴 짧은 텍스트와 사진으로 구성한 두이<Untitled>는 무이네에서 한국으로 갑자기 뛰어넘는 문장들, 그리고 사진 속 바닷가에 놓인 책을 전시장에 물리적으로 놓은 의도적 장치로 인해 작가가 머문 시공간의 방향성을 비틀고 흩뜨린다. 고등어는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베트남 시인 한막뜨(HAN MAC TU)의 시를 단초삼아, 무이네를 실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녹여냈다. 이 풍경 이미지들을 무이네로 느슨하게 봉합하는 것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여성을 그린 드로잉 한 점이다. 이러한 작가적 시선은 우정수의 드로잉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콜라를 먹는 현지인, 도라에몽 장난감을 안고 있는 소년 이미지에 숨어 있는 고양이, 배에 가득 담긴 책더미 이미지가 틈입하며 공산주의의 골조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진 베트남의 문화적 성질이 보이면서도, 사적 심상으로 변주된다.
무이네에서 느낀 이질감을 무분별하게 재현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여행과 작업 사이 거름망 같은 중층(重層)을 만든다. 다시 말해 장소로의 환원이 아닌 제각각의 실천과 과정의 서사 구조로 인해, 관객은 거대서사나 실사 이미지에 기댈 수 없고 여과된 심상을 통해 무이네를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운 구은정의 궤적 드로잉은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의 충돌 지점을 기록하고 무이네에서의 경험을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와 표류물로 남겨 둠으로써 지리적 상상력을 불러온다.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한 강지윤의 작품 <목소리: 파도>는 주고받는 사운드 싱크의 교차를 반복하며 문자와 음성의 경계를 교란시킨다. 이는 언어 너머 서로의 상이한 일상, 현실, 어긋나는 사고 체계를 암시한다. 오석근의 작품 <무이네 #1-#4> 또한 갈라진 땅과 틈, 모래에 박힌 조개껍질, 낡고 거친 벽 등 무이네의 표피를 압축했지만, 그 표상들이 베트남의 정체성을 대변하진 않는다.
미시적 채집을 극대화하여 주석이 필요 없는 혹은 해석 불가한 물성을 띤 작품도 있다. 이주영은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의 생경함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켜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박수지<사이의 문>은 그곳에서 목도한 풍광과 일상성의 결을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두상,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으로 재조합하였고, 관객은 무이네가 아닌, 무이네로 인해 산화된 낯선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각각의 여행담은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듯, 동일성이 없다. 이는 참여 작가들이 베트남과 무이네의 역사성을 선험 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대면하였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이 역시 타성에 젖은 해석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린이를 위한 베트남 여행 가이드를 제작한 두콩의 친절한 안내를 제외하고, 작품으로 현지를 읽으려는 시도는 결국 미끄러진다. 무이네를 향한 성급한 감상을 보류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요약이 아닌 복합적인 질문으로 남았다.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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