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2019

[리뷰] 살아있는 작은 모뉴먼트

청밀크 개인전, Heat Island Scope 리뷰

살아있는 작은 모뉴먼트 

감기 기운으로 열이 오른 몸으로 걸으면 두 발이 지면으로부터 살짝 뜬 기분이 들고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다. 몸 안쪽의 뜨거운 열 덩어리가 느껴지면서, 몸과 닿는 다른 사물의 차가움에 새삼 놀라게 되는데 대비되는 온도 차의 이 생경한 느낌은 살아있는 나를 감각하게 된다. 열이 있다는 당연함. 작가 청밀크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냉기 어린 도시 풍경 사이의 어떤 당연한 온점들을 찾아냈다. 그 온점들은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던 생명체이고 또한,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다. 다름 아닌 길고양이다.
 
전시명 <Heat Island Scope>는 작가가 만든 합성어로 열섬() 영역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원통형의 촬영용 렌즈를 통칭하기도 하는 스코프는 밤에 도시 곳곳을 관측했을 그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원 형태로 제작된 이미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스코프로 포착한 상으로 이해된다. 작업 속 도시의 골조는 대부분 다양한 푸른 톤으로 처리되어있고, 길고양이 및 일부 광경은 붉은 톤으로 가시화하였다. 이미지들은 모두 알루미늄판에 인쇄되어 가까이 가서 보면 날카로운 금속성을 띤다. 관람객은 열화상 카메라 특유의 성질로 그곳이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임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부서지고 망가진 그곳에 남아있는 생명체가 길고양이뿐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 검푸른 도시 풍경은 서울의 재개발 지역이다. 이미지를 얼핏 보면 그곳이 서울인지, 재개발 지역인지, 개발 지역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펜스, 철근, 파이프 비계 등의 실루엣을 살펴볼 수 있다. <Island 03><Island 06>은 각각 폐허처럼 아무것도 없는 철거 지역 너머의 아파트 단지를 붉게 강조하였다. 카메라의 원리대로라면 철조망이 생명체처럼 붉게 빛날 리 없을 텐데, 그는 촬영 원본의 콘트라스트 스케일값을 조절 및 변형하여 철조망을 마치 달궈진 쇳덩이처럼 표현했다. 반면 열섬 현상의 결과로 유추되는 아파트의 붉은 빛은 사람이 사는 도시라는 표식으로도 보인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중간 단계인 폐허의 이미지들이 공존하는 모습은 도시 도처에 있다.1) 적색과 청색은 작가의 선택에 따라 치환되어 철거 지역과 그 주변을 묘사하는 감정적 자극으로 사용되고, 나아가 살아있는 도시와 죽은 도시의 경계로 작용한다.

<Island> 연작의 절반은 이러한 풍경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리고 연작의 절반과 나머지 작업은 붉은 불길 같은 형상의 고양이가 웅크려 앉아있거나 멈춰 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고양이를 비롯하여 이주를 마친 재개발, 재건축 지역에 남아있는 이 생명체들은 어떻게 될까? 주요 선례로는 대규모 재개발지구인 둔촌주공아파트에 서식하는 300여 마리의 고양이를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2017년 이후 사람이 떠난 빈 땅에 여전히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일부 주민과 시민 단체는 이들을 돌보았다. 또한, 지속해서 서울시와 동물 이주 대책을 위한 토론과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서울시는 동물 이주대책을 마련하는 데 비용 등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조합 등 사업 시행자에게 동물을 보호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철거 일정을 시 동물 보호과와 공유하도록 조치하기로 했다.2) 작가가 방문한 지역은 흑석동 일대이다. 이미 그곳을 떠난 주민 몇이 길고양이들을 구조하여 보호 중이고, 고양이를 위한 작은 쉼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가 두어 달 동안 만난 고양이들은 여전히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비거주 지가 되어 죽은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여 체감하다 보니 어떤 날은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였다고도 한다. 펜스 너머 붉게 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막연하게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담은 <Valley>는 그러한 작가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양옆으로 올린 높고 두터운 펜스는 작업 제목과 같이 깊은 계곡이 되었다.

<Island 11><Island 12>는 특히 고양이의 존립을 주변까지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고양이와 닿아있는 땅바닥과 담은 붉게 번져 있고 달궈진 표면은 발을 디디면 뜨거울 것만 같다. 그의 작업에 드러난 고양이는 표정이 없다. , , 입이 없는 몸뚱아리는 그렇지만 정확하게 자신을 보는 작가를 그리고 우리를 향해있다. <Eyes> 작업 역시 담긴 세 마리의 눈이 없는 얼굴에서 정면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인다. 그는 고양이가 광고 등에서 지나치게 귀여운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현실에 반()하고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촬영본을 편집한 영상에 쓰인 금속성의 기괴하고 거친 사운드가 영상 이미지와 다소 이질적으로 상응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고양이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부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반영된 듯 보인다.

내가 느낀 이질감은 작업 이미지의 추상적인 색면의 밋밋함 때문이다. 그는 철거 현장의 디테일한 요소들, 예를 들어 안전제일’, ‘접근 금지등의 표어, 피폐한 모습으로 쌓여있을 각종 폐기물 등의 이미지를 덜어냈다. 다큐멘터리 적 묘사가 사라진 현장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슬로건이나 캠페인성이 추구하는 방향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철거된 그곳의 리얼리티나 고양이의 현 모습이 많이 생략된 작업 이미지들은 긴급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지금의 긴급한 상황을 공감하는 자의 온도는 모두 다를 것이고, 때때로 약자를 향한 리얼한 상은 잔혹하게 타자화된 상징이 될 때가 있다. 그가 다룬 서사의 범위는 지금 그곳의 고양이, 철거 이후 다시 개발이 시작될 그곳의 고양이뿐만 아니라, 도시 생활의 자연스러운 기호로서의 길고양이를 포함한다. 보호와 투쟁과 쟁취의 구호 속에 여기 고양이가 있음39도의 체온으로 가시화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도시에 방치된 수많은 존재가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랗고 붉은 온점 자체를 끊임없이 위시(爲始)하고 목도하는 작가의 행위는 복잡다단한 도시 생태계에 인간 외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간은 전례 없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핵심종이며, 3) 우리는 우리 곁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과의 공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더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박박 몸을 긁는다
승용차 지나간다
고양이, 도로 위에 프린팅 되다
-임현정, ‘얼룩고양이中 4)

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러한 죽음의 속내에는 가려움을 참지 못해 몸을 긁으려고 가던 길을 멈춘 고양이가 있다. 죽은 넋을 기리기도 전에 형체는 건져 올리지 못하고 박제된다. 무너지고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홀연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담은 작업 <Monument>는 그동안 죽임을 당해왔었던 고양이를 기리는 숙연함을 내포한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을 일컫는 모뉴먼트를 작업 제목에 붙임으로써 이 고양이는 살아있는 작은 기념비가 되었다. 온도에 따라 파랑, 분홍, 보라, 흰색 등으로 변하는 열변색 잉크를 프린트 이미지에 덧댄 이유 역시 이들을 향한 다양한 온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심정이 느껴진다. 측은하지만 대상화되지 않았고 의례적인 관심으로 두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렇게 그가 담은 고양이들은 텅 빈 철거 현장의 외피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덧붙이는 소고: 청밀크 개인전 <Heat Island Scope>는 동작구 청년예술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첫 개인전인 만큼 청년예술인들의 성장을 돕는 사업 취지에 적합하였다. 다만 전시 경험이 적은 만큼 작업 외적인 요소-전시 디스플레이, 조명, 홍보물 구성 등-를 조직한 방식이 다소 헐거웠는데, 구체적인 멘토링 및 세밀한 피드백이 더해지면 조금 더 안정감 있는 전시 구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또한, 동작구 내 재개발 지역을 다룸으로써 지역의 다양한 이슈를 예술 언어로 심화하고자 하는 의도도 또렷하였다. 이러한 지역형 사업의 합목적성이 청년예술인의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도움이 되는지는 추후 함께 더 고민해보면 좋겠다.

[각주]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p.181, 현실문화, 2009
서울시 "동물 이주대책 법제화 어렵다", 건설경제기사 발췌,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909021359488620089, 201993일 확인
생태학에서는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생물을 핵심종이라고 한다. 인간은 더 나아가 초 핵심종, 생태계를 조정하는 슈퍼 생물 종이라 할 수 있다.; 메노 스힐트하위전,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p.474, 현암사, 제효영 옮김, 2019
임현정, 꼭 같이 사는 것처럼, pp. 86-87, 문학동네, 2012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동작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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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2019

[서문] 신이피 개인전, '다리의 감정'


신이피 개인전, '다리의 감정', Sema 창고 

신이피는 사체의 냄새가 휘발된 매끄러운 박제 동물을 응시하고 불에 탄 자연사 박물관의 표면을 만지며, 상실이 시작하는 역사적 풍경을 찾는다. 그녀는 박물관의 근대성이 함유하고 있는 죽음과 상실, 이를 체감하는 개인의 경험과 정서를 중첩하여 역사의 이미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거대 담론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사적 경험을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선형적으로 읽히기 쉬운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인공의 시간성과 관계성을 우회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로는 그 어떤 대상도 해석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작가가 표방하는 과학자의 몸짓은 도시의 구조물에 초음파를 쏘며 움직임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박쥐의 날갯짓, 그리고 죽었지만 핀에 꽂히며 다리가 덜덜 떨리는 벌의 진동과 동기화된다. 집단 학살된 듯 진열된 각종 박제 동물의 유의미함은 작품 속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를 반복하며, 박물관의 위상은 세포화되고 파편화된다. 또한, 전소한 자연사 박물관의 흔적들은 마치 인류의 비극적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흘끗 나타났다 사라지는 애도의 문장은 복원의 찰나를 꿈꾸게 만든다. 누가 그 뜻을 알까. 그녀가 더듬은 다리들은 전시장에서 되살아나 충실하게 걷기 시작한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웅얼거림이 벽에 새겨진다.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신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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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2019

[리뷰] 무이네인 듯하다_퍼블릭아트 2019 3월호

<사막요정>
-하나투어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인 듯하다.


어떤 동기로 이들이 베트남 남부 지역의 소도시 무이네(Mui Ne)에 갔는지는 모른다. 전시명 <사막, 요정, >은 이들이 그곳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 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방문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들의 여행기를 대언(代言)하진 않는다. 전시장 내 동선 또한 특별히 유도하는 좌표가 없기에, 작품 사이의 유기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작품 간 긴밀하지 않은 성질 덕분에 무이네의 장소성은 정돈되지 않고, 여행의 질감을 다양하게 살리며, 오히려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관성을 허물어뜨린다.
 
우선 김경호는 베트남의 역사와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무이네를 거점으로 삼는다. 3D 프린트로 제작한 불상, 돌고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은 전리품을 연상시키며, VR 작업 <멀미>는 이 상징물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혁명, 전쟁의 흔적을 무이네의 사막 위에 모래 폭풍처럼 늘어놓았다. ARTINA도 무이네보다는 베트남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으로 제작한 지도, 맵핑, 사운드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반면 작가의 여정에서 비롯한 환상에 초점을 둔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가이드의 시점으로 쓴 짧은 텍스트와 사진으로 구성한 두이<Untitled>는 무이네에서 한국으로 갑자기 뛰어넘는 문장들, 그리고 사진 속 바닷가에 놓인 책을 전시장에 물리적으로 놓은 의도적 장치로 인해 작가가 머문 시공간의 방향성을 비틀고 흩뜨린다. 고등어는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베트남 시인 한막뜨(HAN MAC TU)의 시를 단초삼아, 무이네를 실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녹여냈다. 이 풍경 이미지들을 무이네로 느슨하게 봉합하는 것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여성을 그린 드로잉 한 점이다. 이러한 작가적 시선은 우정수의 드로잉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콜라를 먹는 현지인, 도라에몽 장난감을 안고 있는 소년 이미지에 숨어 있는 고양이, 배에 가득 담긴 책더미 이미지가 틈입하며 공산주의의 골조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진 베트남의 문화적 성질이 보이면서도, 사적 심상으로 변주된다.
무이네에서 느낀 이질감을 무분별하게 재현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여행과 작업 사이 거름망 같은 중층(重層)을 만든다. 다시 말해 장소로의 환원이 아닌 제각각의 실천과 과정의 서사 구조로 인해, 관객은 거대서사나 실사 이미지에 기댈 수 없고 여과된 심상을 통해 무이네를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운 구은정의 궤적 드로잉은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의 충돌 지점을 기록하고 무이네에서의 경험을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와 표류물로 남겨 둠으로써 지리적 상상력을 불러온다.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한 강지윤의 작품 <목소리: 파도>는 주고받는 사운드 싱크의 교차를 반복하며 문자와 음성의 경계를 교란시킨다. 이는 언어 너머 서로의 상이한 일상, 현실, 어긋나는 사고 체계를 암시한다. 오석근의 작품 <무이네 #1-#4> 또한 갈라진 땅과 틈, 모래에 박힌 조개껍질, 낡고 거친 벽 등 무이네의 표피를 압축했지만, 그 표상들이 베트남의 정체성을 대변하진 않는다.
미시적 채집을 극대화하여 주석이 필요 없는 혹은 해석 불가한 물성을 띤 작품도 있다. 이주영은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의 생경함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켜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박수지<사이의 문>은 그곳에서 목도한 풍광과 일상성의 결을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두상,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으로 재조합하였고, 관객은 무이네가 아닌, 무이네로 인해 산화된 낯선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각각의 여행담은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듯, 동일성이 없다. 이는 참여 작가들이 베트남과 무이네의 역사성을 선험 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대면하였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이 역시 타성에 젖은 해석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린이를 위한 베트남 여행 가이드를 제작한 두콩의 친절한 안내를 제외하고, 작품으로 현지를 읽으려는 시도는 결국 미끄러진다. 무이네를 향한 성급한 감상을 보류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요약이 아닌 복합적인 질문으로 남았다.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월간 퍼블릭아트 All rights reserved.
 

2/07/2019

[리뷰] 무이네의 무이네_문화예술희망여행 COA project < 사막, 요정, 샘 > 단체전

<사막, 요정, >
-하나투어 x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의 무이네
 

13명의 작가가 베트남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 무이네를 다녀왔다. 전시명인 <사막, 요정, >은 이들이 방문한 무이네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요약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시에서 광활한 사막, 황홀한 일출, 신비한 바닷가 계곡을 담은 작품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들이 담아낸 무이네는 이곳에 축적된 일상과 베트남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자신의 경험과 행위로서의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두이 작가의 작업 <Untitled>는 여행 가이드의 시선으로 본 무이네의 온도, 그 기록을 인쇄한 얇은 책, 그리고 고요한 무이네의 바닷가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담긴 사진으로 보는 이의 환상과 상상을 촉각적으로 자극한다. 책은 여행자, 그리고 여행을 안내하는 자가 한국과 무이네를 오가며 잠시 정박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전시장 내 또 다른 책인 두콩 작가가 만든 <Kid’s Travel Guide HURRY UP MOM & DAD>는 어린이에게 소개하는 무이네 여행 가이드북이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톡톡 튀는 발상이 섞여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즐겁게 무이네와 베트남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듯 누가,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풍경을 읽어내는 글의 질감이 달라진다.
 
김경호 작가의 VR을 이용한 작업 <멀미>는 베트남의 국가 정체성을 다루는데, 사막 위로 자본주의, 혁명, 투쟁, 전쟁의 상징물들이 혼란스럽게 부유한다. 사막은 사회주의의 흔적이나 프레임같이 기능하고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혼란을 가중한다. 명암 대비가 강렬한 오석근 작가의 작업 <무이네 #1-#4>는 갈라진 땅의 틈, 알알이 박힌 조개 껍질 등을 클로즈업하였다. 사진 속 섬세한 자연 현상의 표피는 그가 무이네를 여행하며 느낀 도시의 정체성뿐 만 아니라 베트남의 역사를 압축한 층위처럼 느껴진다. ARTINA 작가는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에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투영했다. 모자를 이용하여 베트남의 지도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베트남을 상징하는 붉고 노란 색, 연꽃과 연등을 이용한 실루엣과 컬러를 맵핑하였다. 이처럼 작가들은 무이네의 풍경에 베트남의 역사나 상황을 꿰어 비추거나 드리운다.
 
또한, 박수지 작가의 <사이의 문> 작업은 무이네에서 본 사람의 형상과 경치의 결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알록달록한 입체물과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이 이질적으로 조합되어있는데, 이는 작가가 여행에서 느낀 움직임과 이에 따른 낯선 서사를 다양한 시점으로 재조합한 작업이다. 우정수 작가 역시 피싱 빌리지를 보고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은 느낌의 책더미가 가득 담긴 배 드로잉 <그림 그리기 4>, 무이네에서 자신이 눈여겨 볼 것이라고 아마도 예상하지 못 했을 다국적 기업 광고나 해외 유명 만화 캐럭티 모방 상품 등을 변주한 드로잉 <베트남 콜라>, <도라에몽 64>를 선보였다. 고등어 작가의 경우 베트남 시인 한막뜨의 시, 자신이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보지 못한 장면, 그리고 실제로 본 것을 녹여냈다.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시를 단초삼아 완성한 그의 작업 속 허옇게 뜬 달과 물의 이미지에 절망과 죽음의 징표가 숨어있다. 여행에서의 생경함이 우리의 관성적인 시점을 허물어뜨리며, 실재가 아닌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무이네의 장소성은 작가의 감각과 만나 여러 방향과 각도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공감각적 심상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강지윤 작가의 작업 <목소리: 파도>는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하였는데, 헤드폰을 끼고 들숨과 날숨에 섞여 흘러나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전시장 바닥에 가깝게 설치되어있는 입술의 모양과 떨림을 듣고 보고 있으면, 마치 발끝에 왔다 갔다 하는 파도 그리고 그 너머 어딘가의 서로의 상이한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이주영 작가가 쓴 말처럼 어떤 것은 오래 머물지만 금방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도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온전히 이곳에 있다.” 그는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 여행에서 느낀 물성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키며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공명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구은정 작가 역시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과 충돌하는 과거와 현재의 오고 가는 궤적을 드로잉과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로 기록하고, 어딘가에서 채취해온 듯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이네는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명 무이네는 아름다운 관광지일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 사막이 사실은 바닷바람으로 만들어진 모래 언덕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의 안쪽엔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시간성이 존재한다. 전시 <사막, 요정, >은 여행한 장소에서 시작한 작업인 만큼 오고 가고, 밀고 당기며, 흩어지고 모이는 작용과 반작용에 가까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동일성이 없는-오히려 동일성에 맞서는- 제각각의 작품이 서로 호흡하며, 무이네에 감춰진 현실,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즉 작가가 감각한 장소가 관객에게 돌아와 말을 건네며 각자의 여행의 분위기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은 그러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다면의 입체적인 결을 띤 무이네를 만난다. 우리의 시야에 따라 무이네의 모양과 부피가 달라진다. 때론 눈을 감아야 그려지는 풍경이 여기에 있다.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COA Project 는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의 사회공헌사업으로,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 문화예술협력네트워크 공동협업사업의 후원하에 문화예술전문 지원기관인 서울문화재단(서교예술실험센터)과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가 공동 협력으로 진행하였다.

프로젝트 명: 사막, 요정, 샘
참여작가/팀명강지윤, 고등어, 구은정, 김경호, 두콩, 두이, 박수지, 오석근, 우정수, 이주영, ARTINA / 디자인_래빗온
일시: 2019년1월 9일 (수) ~ 2019년 2월 24일 (일)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All rights reserved.
 
 
 
 
 
 

12/14/2018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지금뿐이다

1.
화재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중에 '작가'가 있다.작가는 기자도, 관계자도 아닌 존재다.<재난에 대한 개소리>(2018)에서 그는 희고 검은 연기, 간혹 꺼지지 않은 불씨 따위를 수집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것들에 끌리는 구경꾼인지 생각한다. 불이 났다는 사건과 안타까운 감정 외 환유할 요소가 없이 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그가 '선택함'으로써 의미가 나타난다. 재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작업을 하기 위해 뉴스로 사망자가 없음을 확인하는 자조적이면서 이중적인 태도가 연기처럼 스크린에 흩뿌려진다. 화재 현장에 부는 바람이 보인다. 현장에 있었을 사람 외의 나무, 벌레, 개나 쥐도 떠올렸다. 유난히 빈번하게 불이 나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재난이 일상에 너무 쉽게 희석되지 않게끔 그의 독백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는 기록의 역할을 묻는다. 나는 재난이 일어나는 방향을 알 수 있는 실마리라고 답한다. 그렇게 잠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 같은 기분에서 벗어났다.
 
2.
그는 노이즈를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공장의 기계에서 발생하는잡음과 소음은 흔히 노동의 부피를 상징한다. <쉬었다 합시다>(2018)역으로 공장의 잡음이 사라지는일과 일 사이 쉬는 시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노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보기 위해, 현장 사운드를 탈락시켰다. 영상은목장갑을 벗어 포개놓으면서 시작한다. 종이컵은 커피 믹스를 타 먹는 용도이자 담배꽁초를 꾹꾹 눌러 담는 재떨이로 쓰인다. 오후 세 시, 세 명의 노동자, 세 개의 종이컵,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 등의 반복은 공장의 거대 구조 안 그들의 일상을 가시화한다. 마이크로 나는 인물의 얼굴에 원형 시계가 오버랩되는 중첩씬을 반복해서 보았다. 무음이 묵음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그들의 노동의 무게를 가늠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포착한 일터 과 노동 의 경계에 흐르는 이 분초(分秒)의 형상들은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유예하게 만든다.
 
3.
이러한 성향은 전시장 바닥에 놓인 <Fresh Object>(201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목장갑, 방진 마스크, 안전모, 용접용 안경 등을 초록색 스프레이를 뿌려 거칠게 뒤덮었는데,제목과 다르게 이 사물들은 '신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편안함, 안정감, 정화 등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아닌 이끼나 녹슨 때물처럼 보였다. 혹시수명을 다한 물건을 오브제로 명명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으로 보이길 원한 걸까? 그 정도로 물건을 세밀하게 가공하진 않았다. 이 물건들은 그가 연기, 수증기, , 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발견한, 노이즈같은 존재의 흔적이다. 소모되거나 버려지기 전 작가의 손길을 거쳐 눈에 밟히게 만드는 현상 그 자체이다. 이 초록색 껍질들은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에 관한 다각도의 질문을 던진다.
 
4.
그런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9명의 사람이 있다. 이미지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이들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마네킹 경찰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운전하면서 도로에 놓인 마네킹을 보고 착각하는 순간처럼, 흠칫한 기분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 그는 딱딱한 코에 얹혀있는 선글라스 렌즈에 비친 안전 신호봉의 끝부분과 그림자를 발견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완벽하게 중무장한 교통경찰의 그림자다. 이를 보기 위해 마네킹 앞에 바싹 근접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마네킹인지, 사람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고 차가운 목이다.
 
5.
작품 <오차범위>(2018)에서 간신히 읽히는 문장들-한국을 사랑하지 마라, Don’t be a kid, 어른인걸 다행으로 여겨라-등은 누구의 가치관일까? 한 문장이 꿀렁거리며 화면에 잠식되면 다른 문장이 그 자리에 나타나고, 허물을 벗듯 바뀌는 이러한 제스처는 답 없는 질문과도 같다. 분명한 건, 그가 선택한 이미지는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안정, 비효율, 배제, 소모, 유예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재난과 노동이 발생하는 그곳에서 부단히 작가의 소임을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선택하지 않을 이미지의 성질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미처, 아직, 여태껏과 같은 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선택하지 않은 이미지의 층위가 궁금해진다.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뿐이다.      

프로젝트 명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참여작가/팀명: 이홍한
일시: 2018년 11월 1일 ~ 18일 (월요일 휴관) 11am~8pm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B1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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