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2019

[리뷰] 무이네인 듯하다_퍼블릭아트 2019 3월호

<사막요정>
-하나투어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인 듯하다.


어떤 동기로 이들이 베트남 남부 지역의 소도시 무이네(Mui Ne)에 갔는지는 모른다. 전시명 <사막, 요정, >은 이들이 그곳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 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방문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이들의 여행기를 대언(代言)하진 않는다. 전시장 내 동선 또한 특별히 유도하는 좌표가 없기에, 작품 사이의 유기성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작품 간 긴밀하지 않은 성질 덕분에 무이네의 장소성은 정돈되지 않고, 여행의 질감을 다양하게 살리며, 오히려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관성을 허물어뜨린다.
 
우선 김경호는 베트남의 역사와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무이네를 거점으로 삼는다. 3D 프린트로 제작한 불상, 돌고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은 전리품을 연상시키며, VR 작업 <멀미>는 이 상징물을 포함하여 자본주의, 혁명, 전쟁의 흔적을 무이네의 사막 위에 모래 폭풍처럼 늘어놓았다. ARTINA도 무이네보다는 베트남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으로 제작한 지도, 맵핑, 사운드를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반면 작가의 여정에서 비롯한 환상에 초점을 둔 작품도 살펴볼 수 있다. 가이드의 시점으로 쓴 짧은 텍스트와 사진으로 구성한 두이<Untitled>는 무이네에서 한국으로 갑자기 뛰어넘는 문장들, 그리고 사진 속 바닷가에 놓인 책을 전시장에 물리적으로 놓은 의도적 장치로 인해 작가가 머문 시공간의 방향성을 비틀고 흩뜨린다. 고등어는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베트남 시인 한막뜨(HAN MAC TU)의 시를 단초삼아, 무이네를 실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녹여냈다. 이 풍경 이미지들을 무이네로 느슨하게 봉합하는 것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여성을 그린 드로잉 한 점이다. 이러한 작가적 시선은 우정수의 드로잉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콜라를 먹는 현지인, 도라에몽 장난감을 안고 있는 소년 이미지에 숨어 있는 고양이, 배에 가득 담긴 책더미 이미지가 틈입하며 공산주의의 골조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진 베트남의 문화적 성질이 보이면서도, 사적 심상으로 변주된다.
무이네에서 느낀 이질감을 무분별하게 재현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여행과 작업 사이 거름망 같은 중층(重層)을 만든다. 다시 말해 장소로의 환원이 아닌 제각각의 실천과 과정의 서사 구조로 인해, 관객은 거대서사나 실사 이미지에 기댈 수 없고 여과된 심상을 통해 무이네를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운 구은정의 궤적 드로잉은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의 충돌 지점을 기록하고 무이네에서의 경험을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와 표류물로 남겨 둠으로써 지리적 상상력을 불러온다.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한 강지윤의 작품 <목소리: 파도>는 주고받는 사운드 싱크의 교차를 반복하며 문자와 음성의 경계를 교란시킨다. 이는 언어 너머 서로의 상이한 일상, 현실, 어긋나는 사고 체계를 암시한다. 오석근의 작품 <무이네 #1-#4> 또한 갈라진 땅과 틈, 모래에 박힌 조개껍질, 낡고 거친 벽 등 무이네의 표피를 압축했지만, 그 표상들이 베트남의 정체성을 대변하진 않는다.
미시적 채집을 극대화하여 주석이 필요 없는 혹은 해석 불가한 물성을 띤 작품도 있다. 이주영은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의 생경함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켜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박수지<사이의 문>은 그곳에서 목도한 풍광과 일상성의 결을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두상,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으로 재조합하였고, 관객은 무이네가 아닌, 무이네로 인해 산화된 낯선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각각의 여행담은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글 첫머리에서 언급했듯, 동일성이 없다. 이는 참여 작가들이 베트남과 무이네의 역사성을 선험 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대면하였음을 방증한다. 어쩌면 이 역시 타성에 젖은 해석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린이를 위한 베트남 여행 가이드를 제작한 두콩의 친절한 안내를 제외하고, 작품으로 현지를 읽으려는 시도는 결국 미끄러진다. 무이네를 향한 성급한 감상을 보류한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요약이 아닌 복합적인 질문으로 남았다.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월간 퍼블릭아트 All rights reserved.
 

2/07/2019

[리뷰] 무이네의 무이네_문화예술희망여행 COA project < 사막, 요정, 샘 > 단체전

<사막, 요정, >
-하나투어 x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의 무이네
 

13명의 작가가 베트남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 무이네를 다녀왔다. 전시명인 <사막, 요정, >은 이들이 방문한 무이네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요약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시에서 광활한 사막, 황홀한 일출, 신비한 바닷가 계곡을 담은 작품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들이 담아낸 무이네는 이곳에 축적된 일상과 베트남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자신의 경험과 행위로서의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두이 작가의 작업 <Untitled>는 여행 가이드의 시선으로 본 무이네의 온도, 그 기록을 인쇄한 얇은 책, 그리고 고요한 무이네의 바닷가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담긴 사진으로 보는 이의 환상과 상상을 촉각적으로 자극한다. 책은 여행자, 그리고 여행을 안내하는 자가 한국과 무이네를 오가며 잠시 정박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전시장 내 또 다른 책인 두콩 작가가 만든 <Kid’s Travel Guide HURRY UP MOM & DAD>는 어린이에게 소개하는 무이네 여행 가이드북이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톡톡 튀는 발상이 섞여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즐겁게 무이네와 베트남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듯 누가,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풍경을 읽어내는 글의 질감이 달라진다.
 
김경호 작가의 VR을 이용한 작업 <멀미>는 베트남의 국가 정체성을 다루는데, 사막 위로 자본주의, 혁명, 투쟁, 전쟁의 상징물들이 혼란스럽게 부유한다. 사막은 사회주의의 흔적이나 프레임같이 기능하고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혼란을 가중한다. 명암 대비가 강렬한 오석근 작가의 작업 <무이네 #1-#4>는 갈라진 땅의 틈, 알알이 박힌 조개 껍질 등을 클로즈업하였다. 사진 속 섬세한 자연 현상의 표피는 그가 무이네를 여행하며 느낀 도시의 정체성뿐 만 아니라 베트남의 역사를 압축한 층위처럼 느껴진다. ARTINA 작가는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에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투영했다. 모자를 이용하여 베트남의 지도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베트남을 상징하는 붉고 노란 색, 연꽃과 연등을 이용한 실루엣과 컬러를 맵핑하였다. 이처럼 작가들은 무이네의 풍경에 베트남의 역사나 상황을 꿰어 비추거나 드리운다.
 
또한, 박수지 작가의 <사이의 문> 작업은 무이네에서 본 사람의 형상과 경치의 결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알록달록한 입체물과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이 이질적으로 조합되어있는데, 이는 작가가 여행에서 느낀 움직임과 이에 따른 낯선 서사를 다양한 시점으로 재조합한 작업이다. 우정수 작가 역시 피싱 빌리지를 보고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은 느낌의 책더미가 가득 담긴 배 드로잉 <그림 그리기 4>, 무이네에서 자신이 눈여겨 볼 것이라고 아마도 예상하지 못 했을 다국적 기업 광고나 해외 유명 만화 캐럭티 모방 상품 등을 변주한 드로잉 <베트남 콜라>, <도라에몽 64>를 선보였다. 고등어 작가의 경우 베트남 시인 한막뜨의 시, 자신이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보지 못한 장면, 그리고 실제로 본 것을 녹여냈다.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시를 단초삼아 완성한 그의 작업 속 허옇게 뜬 달과 물의 이미지에 절망과 죽음의 징표가 숨어있다. 여행에서의 생경함이 우리의 관성적인 시점을 허물어뜨리며, 실재가 아닌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무이네의 장소성은 작가의 감각과 만나 여러 방향과 각도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공감각적 심상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강지윤 작가의 작업 <목소리: 파도>는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하였는데, 헤드폰을 끼고 들숨과 날숨에 섞여 흘러나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전시장 바닥에 가깝게 설치되어있는 입술의 모양과 떨림을 듣고 보고 있으면, 마치 발끝에 왔다 갔다 하는 파도 그리고 그 너머 어딘가의 서로의 상이한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이주영 작가가 쓴 말처럼 어떤 것은 오래 머물지만 금방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도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온전히 이곳에 있다.” 그는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 여행에서 느낀 물성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키며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공명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구은정 작가 역시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과 충돌하는 과거와 현재의 오고 가는 궤적을 드로잉과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로 기록하고, 어딘가에서 채취해온 듯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이네는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명 무이네는 아름다운 관광지일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 사막이 사실은 바닷바람으로 만들어진 모래 언덕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의 안쪽엔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시간성이 존재한다. 전시 <사막, 요정, >은 여행한 장소에서 시작한 작업인 만큼 오고 가고, 밀고 당기며, 흩어지고 모이는 작용과 반작용에 가까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동일성이 없는-오히려 동일성에 맞서는- 제각각의 작품이 서로 호흡하며, 무이네에 감춰진 현실,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즉 작가가 감각한 장소가 관객에게 돌아와 말을 건네며 각자의 여행의 분위기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은 그러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다면의 입체적인 결을 띤 무이네를 만난다. 우리의 시야에 따라 무이네의 모양과 부피가 달라진다. 때론 눈을 감아야 그려지는 풍경이 여기에 있다.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COA Project 는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의 사회공헌사업으로,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 문화예술협력네트워크 공동협업사업의 후원하에 문화예술전문 지원기관인 서울문화재단(서교예술실험센터)과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가 공동 협력으로 진행하였다.

프로젝트 명: 사막, 요정, 샘
참여작가/팀명강지윤, 고등어, 구은정, 김경호, 두콩, 두이, 박수지, 오석근, 우정수, 이주영, ARTINA / 디자인_래빗온
일시: 2019년1월 9일 (수) ~ 2019년 2월 24일 (일)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All rights reserved.
 
 
 
 
 
 

12/14/2018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지금뿐이다

1.
화재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중에 '작가'가 있다.작가는 기자도, 관계자도 아닌 존재다.<재난에 대한 개소리>(2018)에서 그는 희고 검은 연기, 간혹 꺼지지 않은 불씨 따위를 수집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것들에 끌리는 구경꾼인지 생각한다. 불이 났다는 사건과 안타까운 감정 외 환유할 요소가 없이 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그가 '선택함'으로써 의미가 나타난다. 재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작업을 하기 위해 뉴스로 사망자가 없음을 확인하는 자조적이면서 이중적인 태도가 연기처럼 스크린에 흩뿌려진다. 화재 현장에 부는 바람이 보인다. 현장에 있었을 사람 외의 나무, 벌레, 개나 쥐도 떠올렸다. 유난히 빈번하게 불이 나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재난이 일상에 너무 쉽게 희석되지 않게끔 그의 독백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는 기록의 역할을 묻는다. 나는 재난이 일어나는 방향을 알 수 있는 실마리라고 답한다. 그렇게 잠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 같은 기분에서 벗어났다.
 
2.
그는 노이즈를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공장의 기계에서 발생하는잡음과 소음은 흔히 노동의 부피를 상징한다. <쉬었다 합시다>(2018)역으로 공장의 잡음이 사라지는일과 일 사이 쉬는 시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노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보기 위해, 현장 사운드를 탈락시켰다. 영상은목장갑을 벗어 포개놓으면서 시작한다. 종이컵은 커피 믹스를 타 먹는 용도이자 담배꽁초를 꾹꾹 눌러 담는 재떨이로 쓰인다. 오후 세 시, 세 명의 노동자, 세 개의 종이컵,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 등의 반복은 공장의 거대 구조 안 그들의 일상을 가시화한다. 마이크로 나는 인물의 얼굴에 원형 시계가 오버랩되는 중첩씬을 반복해서 보았다. 무음이 묵음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그들의 노동의 무게를 가늠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포착한 일터 과 노동 의 경계에 흐르는 이 분초(分秒)의 형상들은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유예하게 만든다.
 
3.
이러한 성향은 전시장 바닥에 놓인 <Fresh Object>(201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목장갑, 방진 마스크, 안전모, 용접용 안경 등을 초록색 스프레이를 뿌려 거칠게 뒤덮었는데,제목과 다르게 이 사물들은 '신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편안함, 안정감, 정화 등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아닌 이끼나 녹슨 때물처럼 보였다. 혹시수명을 다한 물건을 오브제로 명명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으로 보이길 원한 걸까? 그 정도로 물건을 세밀하게 가공하진 않았다. 이 물건들은 그가 연기, 수증기, , 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발견한, 노이즈같은 존재의 흔적이다. 소모되거나 버려지기 전 작가의 손길을 거쳐 눈에 밟히게 만드는 현상 그 자체이다. 이 초록색 껍질들은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에 관한 다각도의 질문을 던진다.
 
4.
그런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9명의 사람이 있다. 이미지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이들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마네킹 경찰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운전하면서 도로에 놓인 마네킹을 보고 착각하는 순간처럼, 흠칫한 기분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 그는 딱딱한 코에 얹혀있는 선글라스 렌즈에 비친 안전 신호봉의 끝부분과 그림자를 발견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완벽하게 중무장한 교통경찰의 그림자다. 이를 보기 위해 마네킹 앞에 바싹 근접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마네킹인지, 사람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고 차가운 목이다.
 
5.
작품 <오차범위>(2018)에서 간신히 읽히는 문장들-한국을 사랑하지 마라, Don’t be a kid, 어른인걸 다행으로 여겨라-등은 누구의 가치관일까? 한 문장이 꿀렁거리며 화면에 잠식되면 다른 문장이 그 자리에 나타나고, 허물을 벗듯 바뀌는 이러한 제스처는 답 없는 질문과도 같다. 분명한 건, 그가 선택한 이미지는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안정, 비효율, 배제, 소모, 유예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재난과 노동이 발생하는 그곳에서 부단히 작가의 소임을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선택하지 않을 이미지의 성질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미처, 아직, 여태껏과 같은 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선택하지 않은 이미지의 층위가 궁금해진다.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뿐이다.      

프로젝트 명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참여작가/팀명: 이홍한
일시: 2018년 11월 1일 ~ 18일 (월요일 휴관) 11am~8pm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B1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All rights reserved.
글 바로가기: https://cafe.naver.com/seoulartspace/6193


[리뷰] 매미의 문장: 라운드 테이블 2차 리뷰

리뷰2018 아고라 매미의 문장 : 라운드테이블
 
매미의 문장 두 번째 라운드 테이블은 와우산 타이핑 클럽 (곽현지, 김이현, 송이랑, 이기원, 이상엽, 장예지, 조은채, 콘노유키), 스크린 테스트 (김보경, 백종관), 홍양산 (홍태림, 이양헌, 정강산) 의 프로젝트 발표와 영화 미디어학자 김지훈의 기획 렉처로 구성되었고, 박수지 큐레이터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하였다.
 
[와우산 텍스트 캐비닛 : 미술 텍스트 아카이브 구축하기]

20179월에 결성한 와우산 타이핑 클럽은 하반기 운영 예정인 텍스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와우산 텍스트 캐비닛(이하 WTC)’가 기존 동시대 비평 아카이브 구축 방식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를 짚어보았다. WTC는 근 4~5년에 걸쳐 생긴 신생공간에서 파생한 텍스트와 2014년 이후 작가, 기획자, 비평가가 생산한 텍스트를 중점적으로 수집한다. 온라인상에서 휘발되기 쉬운 텍스트를 붙잡고, 반대로 유통 및 열람하기 쉽지 않은 지면의 텍스트를 온라인 아카이브로 끌어옴으로서, 1980~1990년대 생 미술 관련 종사자의 활동과 작업, 글을 용이하게 살펴볼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아카이브의 범위가 현재 이들이 가진 공신력과 신뢰도 내에서만 실행 가능하다는 점, 통계적 데이터로써 활용하기에는 부족한 아카이브의 양 등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그렇지만 실현할 수 없더라도, 그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표자의 말처럼, 이러한 자기 조직적 전략은 글을 기고할 자리를 다방면으로 늘리고 이에 따른 메타 비평의 지속을 가능케 한다. 또한, 이들 뿐 아니라 신진 작가 및 기획자, 비평가의 현장성을 생생하고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 집단오찬, 옐로우 펜 클럽, 크리틱칼 등의 비평 플랫폼의 필요와 유효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 매미의 문서: 2018627,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구성원 3명의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927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김정현 평론가와 만나 와우산 타이핑 클럽 활동에 대한 피드백, 메타 비평, 각자의 고민 등을 나눴다.
 
[무빙 이미지의 확장을 위한 수사학]

스크린 테스트1960년대의 무빙 이미지, 특히 1964년에서 66년까지 미국에서 활발했던 실험적 무빙 이미지 작업을 집약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지금은 익숙한 영상 매체와 공간화이트 큐브, 블랙 박스 등이 당시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무빙 이미지가 다른 예술의 물리적, 제도적 공간 속에 어떻게 전복적 요인으로 도입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발표자는 주요 문헌으로 참조한 앤드류 V. 예르아스키(Andrew V. Uroskie)의 저서 Between the Black Box and the White Cube(2014)를 토대로, 연도별, 뉴욕 영화제와 확장영화 페스티벌의 현장과 주요 참여 작가 및 작품을 소개하였다. 로버트 휘트먼, 앤디 워홀, 켄 듀이, 스텐 벤더빅의 작품을 중심으로 영화적 장치의 재료의 특성들이 함유한 이질성, 불순성을 살펴보았는데, 미술관과 영화관을 오가며 변모하는 무빙 이미지의 다양한 전시 형태도 함께 짚어보았다. 이를 통해 무빙 이미지가 우리가 인지하는 내·외부환경과 접촉하며 일으키는 균열 지점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이어진 기획 렉처는 스크린 테스트의 발표와 연관하여, 무빙 이미지 매체와 현대 미술과의 관련성을 전시의 영화에서 포스트 인터넷 아트까지 다양한 레퍼런스를 통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영화관의 안팎에서 무빙 이미지의 운동성(mobility)이 어떻게 관람객과 시공간을 동요시키고 재구성하는지, 이러한 운동성이 어떻게 가상과 물리적 현존의 경계를 뒤섞고 주체를 굴절시키며 세계 자체를 유동적인 미디어 스페이스로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다.
 
* 매미의 문서: 2018625일부터 827일까지, 서교예술실험센터와 협의 후 이메일을 통해 무빙 이미지가 다른 예술의 물리적, 제도적 공간 속에 작용하는 전복적 요인, 무빙 이미지의 정의 범위, 이접 시네마, 종합 영화 등 을 연구하였다.
 
[서사, 픽션, 이야기꾼 : 민중미술과 제3세계의 플롯들]

홍양산은 각자의 주제를 세미나 형식으로 꾸렸다. ‘새로운 정치-프로젝트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를 위해 민중미술과 제3세계를 실패한 에피소드가 아닌 새로운 픽션으로 구성하여, 그 안에서 축출할 수 있는 가치를 더듬어가는 연구자로서의 태도가 돋보였다. 그 예로 홍태림의 경우 최민화 작가의 작품 이미지 안에 보이는 표상을 통해 민족주의의 역사적 서사를 봄과 동시에, 드로잉에서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사적 생활에 관한 연구를 함께 하여 서사로서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정강산은 제3세계의 급진성을 역사 안에서 세밀하게 살펴보고 자본주의, 전지구화와 제3세계와의 관계, 시지각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한국의 민중미술과의 연결 지점으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이양헌을 포함하여 자신을 세 명의 이야기꾼으로 소개한 이들은 주제에 대한 관점을 다각적으로 주시하고자 한 명이 발표하면 나머지 멤버 두 명이 패널이 되는 방식으로 발표를 진행하였다. 연구 주제뿐만 아니라 모임 자체를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만 실패했던 서사적 에피소드로서 상정하고 로컬리티에 기반한 이야기꾼의 출현으로 자신을 위치시킨 점이 흥미로웠다.
 
*매미의 문서: 201871,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 영화 및 다큐멘터리에서 관측되는 풍경의 회귀에 관한 모임을 가졌다. 815일까지는 스벤 뤼티켄의 ‘Viewing Copies: On the Mobility of Moving Images’를 함께 읽고 번역하였으며, 928일에는 민중미술에 대한 개괄적인 스케치 모임을 가졌다.
 
매미의 문장: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하여 각 팀이 공유한 매미의 문서와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이들이 자신에게 공들였을 뜨거운 시간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규모가 큰 포럼이나 학회 발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도였다.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기존 프레임을 맹신할 수 없는 각자의 상황도 미세하게 느껴졌다. 함께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나누며 서로의 탈피와 갱신을 도모하는 또 다른 시간과 장소를 기대해본다.
 
*2018 아고라 <매미의 문장> 결과집은 20191월에 발간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명: 《2018 아고라매미의 문장》 2차 라운드 테이블
참여자: 박수지,와우산 타이핑 클럽 (곽현지김이현송이랑이기원이상엽장예지조은채콘노유키)〉,스크린 테스트 (김보경백종관),홍양산 (홍태림이양헌정강산)
일시: 2018년 10월 13일 토요일 오후 6-9시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