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2018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리뷰] 소액다컴_11월 선정자
이홍한 <-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지금뿐이다

1.
화재 현장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중에 '작가'가 있다.작가는 기자도, 관계자도 아닌 존재다.<재난에 대한 개소리>(2018)에서 그는 희고 검은 연기, 간혹 꺼지지 않은 불씨 따위를 수집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것들에 끌리는 구경꾼인지 생각한다. 불이 났다는 사건과 안타까운 감정 외 환유할 요소가 없이 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그가 '선택함'으로써 의미가 나타난다. 재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작업을 하기 위해 뉴스로 사망자가 없음을 확인하는 자조적이면서 이중적인 태도가 연기처럼 스크린에 흩뿌려진다. 화재 현장에 부는 바람이 보인다. 현장에 있었을 사람 외의 나무, 벌레, 개나 쥐도 떠올렸다. 유난히 빈번하게 불이 나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재난이 일상에 너무 쉽게 희석되지 않게끔 그의 독백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는 기록의 역할을 묻는다. 나는 재난이 일어나는 방향을 알 수 있는 실마리라고 답한다. 그렇게 잠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 같은 기분에서 벗어났다.
 
2.
그는 노이즈를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같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공장의 기계에서 발생하는잡음과 소음은 흔히 노동의 부피를 상징한다. <쉬었다 합시다>(2018)역으로 공장의 잡음이 사라지는일과 일 사이 쉬는 시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노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보기 위해, 현장 사운드를 탈락시켰다. 영상은목장갑을 벗어 포개놓으면서 시작한다. 종이컵은 커피 믹스를 타 먹는 용도이자 담배꽁초를 꾹꾹 눌러 담는 재떨이로 쓰인다. 오후 세 시, 세 명의 노동자, 세 개의 종이컵,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 등의 반복은 공장의 거대 구조 안 그들의 일상을 가시화한다. 마이크로 나는 인물의 얼굴에 원형 시계가 오버랩되는 중첩씬을 반복해서 보았다. 무음이 묵음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그들의 노동의 무게를 가늠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포착한 일터 과 노동 의 경계에 흐르는 이 분초(分秒)의 형상들은 오히려 섣부른 판단을 유예하게 만든다.
 
3.
이러한 성향은 전시장 바닥에 놓인 <Fresh Object>(2018)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목장갑, 방진 마스크, 안전모, 용접용 안경 등을 초록색 스프레이를 뿌려 거칠게 뒤덮었는데,제목과 다르게 이 사물들은 '신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편안함, 안정감, 정화 등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아닌 이끼나 녹슨 때물처럼 보였다. 혹시수명을 다한 물건을 오브제로 명명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으로 보이길 원한 걸까? 그 정도로 물건을 세밀하게 가공하진 않았다. 이 물건들은 그가 연기, 수증기, , 공장 등을 찾아다니며 발견한, 노이즈같은 존재의 흔적이다. 소모되거나 버려지기 전 작가의 손길을 거쳐 눈에 밟히게 만드는 현상 그 자체이다. 이 초록색 껍질들은 선택에서 밀려난 존재에 관한 다각도의 질문을 던진다.
 
4.
그런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9명의 사람이 있다. 이미지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이들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마네킹 경찰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운전하면서 도로에 놓인 마네킹을 보고 착각하는 순간처럼, 흠칫한 기분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 그는 딱딱한 코에 얹혀있는 선글라스 렌즈에 비친 안전 신호봉의 끝부분과 그림자를 발견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완벽하게 중무장한 교통경찰의 그림자다. 이를 보기 위해 마네킹 앞에 바싹 근접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마네킹인지, 사람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고 차가운 목이다.
 
5.
작품 <오차범위>(2018)에서 간신히 읽히는 문장들-한국을 사랑하지 마라, Don’t be a kid, 어른인걸 다행으로 여겨라-등은 누구의 가치관일까? 한 문장이 꿀렁거리며 화면에 잠식되면 다른 문장이 그 자리에 나타나고, 허물을 벗듯 바뀌는 이러한 제스처는 답 없는 질문과도 같다. 분명한 건, 그가 선택한 이미지는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안정, 비효율, 배제, 소모, 유예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재난과 노동이 발생하는 그곳에서 부단히 작가의 소임을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선택하지 않을 이미지의 성질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미처, 아직, 여태껏과 같은 부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선택하지 않은 이미지의 층위가 궁금해진다.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뿐이다.      

프로젝트 명비-선택 이미지에 대한 세 가지 Three things for non-selective images
참여작가/팀명: 이홍한
일시: 2018년 11월 1일 ~ 18일 (월요일 휴관) 11am~8pm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B1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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