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2019

[리뷰] 무이네의 무이네_문화예술희망여행 COA project < 사막, 요정, 샘 > 단체전

<사막, 요정, >
-하나투어 x 서교예술실험센터 협력사업 <문화예술 희망여행 : COA project>
 

무이네의 무이네
 

13명의 작가가 베트남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 무이네를 다녀왔다. 전시명인 <사막, 요정, >은 이들이 방문한 무이네의 관광명소인 하얀 사막, 빨간 사막, 요정의 샘, 고래사원, 피싱 빌리지 등을 요약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시에서 광활한 사막, 황홀한 일출, 신비한 바닷가 계곡을 담은 작품을 만나기는 어렵다. 이들이 담아낸 무이네는 이곳에 축적된 일상과 베트남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자신의 경험과 행위로서의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두이 작가의 작업 <Untitled>는 여행 가이드의 시선으로 본 무이네의 온도, 그 기록을 인쇄한 얇은 책, 그리고 고요한 무이네의 바닷가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담긴 사진으로 보는 이의 환상과 상상을 촉각적으로 자극한다. 책은 여행자, 그리고 여행을 안내하는 자가 한국과 무이네를 오가며 잠시 정박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전시장 내 또 다른 책인 두콩 작가가 만든 <Kid’s Travel Guide HURRY UP MOM & DAD>는 어린이에게 소개하는 무이네 여행 가이드북이다.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톡톡 튀는 발상이 섞여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즐겁게 무이네와 베트남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듯 누가,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풍경을 읽어내는 글의 질감이 달라진다.
 
김경호 작가의 VR을 이용한 작업 <멀미>는 베트남의 국가 정체성을 다루는데, 사막 위로 자본주의, 혁명, 투쟁, 전쟁의 상징물들이 혼란스럽게 부유한다. 사막은 사회주의의 흔적이나 프레임같이 기능하고 영상 속에서 느껴지는 혼란을 가중한다. 명암 대비가 강렬한 오석근 작가의 작업 <무이네 #1-#4>는 갈라진 땅의 틈, 알알이 박힌 조개 껍질 등을 클로즈업하였다. 사진 속 섬세한 자연 현상의 표피는 그가 무이네를 여행하며 느낀 도시의 정체성뿐 만 아니라 베트남의 역사를 압축한 층위처럼 느껴진다. ARTINA 작가는 베트남의 전통 모자 논(non)에 베트남 고유의 전통과 현재의 도시성을 투영했다. 모자를 이용하여 베트남의 지도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베트남을 상징하는 붉고 노란 색, 연꽃과 연등을 이용한 실루엣과 컬러를 맵핑하였다. 이처럼 작가들은 무이네의 풍경에 베트남의 역사나 상황을 꿰어 비추거나 드리운다.
 
또한, 박수지 작가의 <사이의 문> 작업은 무이네에서 본 사람의 형상과 경치의 결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는 알록달록한 입체물과 짝이 맞지 않는 문짝, 아크릴 봉 등이 이질적으로 조합되어있는데, 이는 작가가 여행에서 느낀 움직임과 이에 따른 낯선 서사를 다양한 시점으로 재조합한 작업이다. 우정수 작가 역시 피싱 빌리지를 보고 펄떡거리는 물고기 같은 느낌의 책더미가 가득 담긴 배 드로잉 <그림 그리기 4>, 무이네에서 자신이 눈여겨 볼 것이라고 아마도 예상하지 못 했을 다국적 기업 광고나 해외 유명 만화 캐럭티 모방 상품 등을 변주한 드로잉 <베트남 콜라>, <도라에몽 64>를 선보였다. 고등어 작가의 경우 베트남 시인 한막뜨의 시, 자신이 이번 여행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보지 못한 장면, 그리고 실제로 본 것을 녹여냈다. 마모되어 가고, 쇠약한 신체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담은 시를 단초삼아 완성한 그의 작업 속 허옇게 뜬 달과 물의 이미지에 절망과 죽음의 징표가 숨어있다. 여행에서의 생경함이 우리의 관성적인 시점을 허물어뜨리며, 실재가 아닌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무이네의 장소성은 작가의 감각과 만나 여러 방향과 각도로 흩어진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공감각적 심상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강지윤 작가의 작업 <목소리: 파도>는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목소리로 파도 소리를 재현하였는데, 헤드폰을 끼고 들숨과 날숨에 섞여 흘러나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전시장 바닥에 가깝게 설치되어있는 입술의 모양과 떨림을 듣고 보고 있으면, 마치 발끝에 왔다 갔다 하는 파도 그리고 그 너머 어딘가의 서로의 상이한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이주영 작가가 쓴 말처럼 어떤 것은 오래 머물지만 금방 사라질 것만 같은 것들도 보인다. 그러나 때때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온전히 이곳에 있다.” 그는 무이네에서 마주한 알록달록한 타일, 금박을 입힌 지전들, 바닷가의 비린내 등 여행에서 느낀 물성을 마스크팩, 오브라이트 등의 재료로 긁어내고 녹여내며 증발시키며 말 그대로 '피부에 와닿는' 감각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공명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구은정 작가 역시 여행에서 마주쳤던 의외의, 느닷없는 장면과 충돌하는 과거와 현재의 오고 가는 궤적을 드로잉과 노이즈에 가까운 악보로 기록하고, 어딘가에서 채취해온 듯한 오브제를 이용하여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이네는 바다와 사막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분명 무이네는 아름다운 관광지일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 사막이 사실은 바닷바람으로 만들어진 모래 언덕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풍경의 안쪽엔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시간성이 존재한다. 전시 <사막, 요정, >은 여행한 장소에서 시작한 작업인 만큼 오고 가고, 밀고 당기며, 흩어지고 모이는 작용과 반작용에 가까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방문했다는 것 외에는 동일성이 없는-오히려 동일성에 맞서는- 제각각의 작품이 서로 호흡하며, 무이네에 감춰진 현실,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즉 작가가 감각한 장소가 관객에게 돌아와 말을 건네며 각자의 여행의 분위기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은 그러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다면의 입체적인 결을 띤 무이네를 만난다. 우리의 시야에 따라 무이네의 모양과 부피가 달라진다. 때론 눈을 감아야 그려지는 풍경이 여기에 있다.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COA Project 는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의 사회공헌사업으로,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 문화예술협력네트워크 공동협업사업의 후원하에 문화예술전문 지원기관인 서울문화재단(서교예술실험센터)과 여행전문기업 하나투어가 공동 협력으로 진행하였다.

프로젝트 명: 사막, 요정, 샘
참여작가/팀명강지윤, 고등어, 구은정, 김경호, 두콩, 두이, 박수지, 오석근, 우정수, 이주영, ARTINA / 디자인_래빗온
일시: 2019년1월 9일 (수) ~ 2019년 2월 24일 (일)
장소: 서교예술실험센터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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