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019

[서문] 신이피 개인전, '다리의 감정'


신이피 개인전, '다리의 감정', Sema 창고 

신이피는 사체의 냄새가 휘발된 매끄러운 박제 동물을 응시하고 불에 탄 자연사 박물관의 표면을 만지며, 상실이 시작하는 역사적 풍경을 찾는다. 그녀는 박물관의 근대성이 함유하고 있는 죽음과 상실, 이를 체감하는 개인의 경험과 정서를 중첩하여 역사의 이미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거대 담론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사적 경험을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선형적으로 읽히기 쉬운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인공의 시간성과 관계성을 우회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로는 그 어떤 대상도 해석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작가가 표방하는 과학자의 몸짓은 도시의 구조물에 초음파를 쏘며 움직임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박쥐의 날갯짓, 그리고 죽었지만 핀에 꽂히며 다리가 덜덜 떨리는 벌의 진동과 동기화된다. 집단 학살된 듯 진열된 각종 박제 동물의 유의미함은 작품 속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를 반복하며, 박물관의 위상은 세포화되고 파편화된다. 또한, 전소한 자연사 박물관의 흔적들은 마치 인류의 비극적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흘끗 나타났다 사라지는 애도의 문장은 복원의 찰나를 꿈꾸게 만든다. 누가 그 뜻을 알까. 그녀가 더듬은 다리들은 전시장에서 되살아나 충실하게 걷기 시작한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웅얼거림이 벽에 새겨진다.

text by 봄로야 
COPYRIGHT © Bom,roya / 신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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