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2019

[리뷰] 살아있는 작은 모뉴먼트

청밀크 개인전, Heat Island Scope 리뷰

살아있는 작은 모뉴먼트 

감기 기운으로 열이 오른 몸으로 걸으면 두 발이 지면으로부터 살짝 뜬 기분이 들고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진다. 몸 안쪽의 뜨거운 열 덩어리가 느껴지면서, 몸과 닿는 다른 사물의 차가움에 새삼 놀라게 되는데 대비되는 온도 차의 이 생경한 느낌은 살아있는 나를 감각하게 된다. 열이 있다는 당연함. 작가 청밀크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하여 냉기 어린 도시 풍경 사이의 어떤 당연한 온점들을 찾아냈다. 그 온점들은 우리가 언제나 알고 있던 생명체이고 또한,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다. 다름 아닌 길고양이다.
 
전시명 <Heat Island Scope>는 작가가 만든 합성어로 열섬() 영역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원통형의 촬영용 렌즈를 통칭하기도 하는 스코프는 밤에 도시 곳곳을 관측했을 그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원 형태로 제작된 이미지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스코프로 포착한 상으로 이해된다. 작업 속 도시의 골조는 대부분 다양한 푸른 톤으로 처리되어있고, 길고양이 및 일부 광경은 붉은 톤으로 가시화하였다. 이미지들은 모두 알루미늄판에 인쇄되어 가까이 가서 보면 날카로운 금속성을 띤다. 관람객은 열화상 카메라 특유의 성질로 그곳이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장소임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부서지고 망가진 그곳에 남아있는 생명체가 길고양이뿐이라는 사실도 동시에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에 말에 따르면, 이 검푸른 도시 풍경은 서울의 재개발 지역이다. 이미지를 얼핏 보면 그곳이 서울인지, 재개발 지역인지, 개발 지역인지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펜스, 철근, 파이프 비계 등의 실루엣을 살펴볼 수 있다. <Island 03><Island 06>은 각각 폐허처럼 아무것도 없는 철거 지역 너머의 아파트 단지를 붉게 강조하였다. 카메라의 원리대로라면 철조망이 생명체처럼 붉게 빛날 리 없을 텐데, 그는 촬영 원본의 콘트라스트 스케일값을 조절 및 변형하여 철조망을 마치 달궈진 쇳덩이처럼 표현했다. 반면 열섬 현상의 결과로 유추되는 아파트의 붉은 빛은 사람이 사는 도시라는 표식으로도 보인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중간 단계인 폐허의 이미지들이 공존하는 모습은 도시 도처에 있다.1) 적색과 청색은 작가의 선택에 따라 치환되어 철거 지역과 그 주변을 묘사하는 감정적 자극으로 사용되고, 나아가 살아있는 도시와 죽은 도시의 경계로 작용한다.

<Island> 연작의 절반은 이러한 풍경 이미지로 구성된다. 그리고 연작의 절반과 나머지 작업은 붉은 불길 같은 형상의 고양이가 웅크려 앉아있거나 멈춰 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고양이를 비롯하여 이주를 마친 재개발, 재건축 지역에 남아있는 이 생명체들은 어떻게 될까? 주요 선례로는 대규모 재개발지구인 둔촌주공아파트에 서식하는 300여 마리의 고양이를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2017년 이후 사람이 떠난 빈 땅에 여전히 살고 있는 고양이를 위해 일부 주민과 시민 단체는 이들을 돌보았다. 또한, 지속해서 서울시와 동물 이주 대책을 위한 토론과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서울시는 동물 이주대책을 마련하는 데 비용 등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조합 등 사업 시행자에게 동물을 보호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철거 일정을 시 동물 보호과와 공유하도록 조치하기로 했다.2) 작가가 방문한 지역은 흑석동 일대이다. 이미 그곳을 떠난 주민 몇이 길고양이들을 구조하여 보호 중이고, 고양이를 위한 작은 쉼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가 두어 달 동안 만난 고양이들은 여전히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비거주 지가 되어 죽은 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반복하여 체감하다 보니 어떤 날은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였다고도 한다. 펜스 너머 붉게 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막연하게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담은 <Valley>는 그러한 작가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양옆으로 올린 높고 두터운 펜스는 작업 제목과 같이 깊은 계곡이 되었다.

<Island 11><Island 12>는 특히 고양이의 존립을 주변까지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고양이와 닿아있는 땅바닥과 담은 붉게 번져 있고 달궈진 표면은 발을 디디면 뜨거울 것만 같다. 그의 작업에 드러난 고양이는 표정이 없다. , , 입이 없는 몸뚱아리는 그렇지만 정확하게 자신을 보는 작가를 그리고 우리를 향해있다. <Eyes> 작업 역시 담긴 세 마리의 눈이 없는 얼굴에서 정면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뜩인다. 그는 고양이가 광고 등에서 지나치게 귀여운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현실에 반()하고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촬영본을 편집한 영상에 쓰인 금속성의 기괴하고 거친 사운드가 영상 이미지와 다소 이질적으로 상응하고 있는데, 이 역시 고양이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부수고자 하는 그의 태도가 반영된 듯 보인다.

내가 느낀 이질감은 작업 이미지의 추상적인 색면의 밋밋함 때문이다. 그는 철거 현장의 디테일한 요소들, 예를 들어 안전제일’, ‘접근 금지등의 표어, 피폐한 모습으로 쌓여있을 각종 폐기물 등의 이미지를 덜어냈다. 다큐멘터리 적 묘사가 사라진 현장 이미지는 전반적으로 슬로건이나 캠페인성이 추구하는 방향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면에서 철거된 그곳의 리얼리티나 고양이의 현 모습이 많이 생략된 작업 이미지들은 긴급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지금의 긴급한 상황을 공감하는 자의 온도는 모두 다를 것이고, 때때로 약자를 향한 리얼한 상은 잔혹하게 타자화된 상징이 될 때가 있다. 그가 다룬 서사의 범위는 지금 그곳의 고양이, 철거 이후 다시 개발이 시작될 그곳의 고양이뿐만 아니라, 도시 생활의 자연스러운 기호로서의 길고양이를 포함한다. 보호와 투쟁과 쟁취의 구호 속에 여기 고양이가 있음39도의 체온으로 가시화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도시에 방치된 수많은 존재가 살아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랗고 붉은 온점 자체를 끊임없이 위시(爲始)하고 목도하는 작가의 행위는 복잡다단한 도시 생태계에 인간 외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간은 전례 없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핵심종이며, 3) 우리는 우리 곁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과의 공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더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박박 몸을 긁는다
승용차 지나간다
고양이, 도로 위에 프린팅 되다
-임현정, ‘얼룩고양이中 4)

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러한 죽음의 속내에는 가려움을 참지 못해 몸을 긁으려고 가던 길을 멈춘 고양이가 있다. 죽은 넋을 기리기도 전에 형체는 건져 올리지 못하고 박제된다. 무너지고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홀연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담은 작업 <Monument>는 그동안 죽임을 당해왔었던 고양이를 기리는 숙연함을 내포한다.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을 일컫는 모뉴먼트를 작업 제목에 붙임으로써 이 고양이는 살아있는 작은 기념비가 되었다. 온도에 따라 파랑, 분홍, 보라, 흰색 등으로 변하는 열변색 잉크를 프린트 이미지에 덧댄 이유 역시 이들을 향한 다양한 온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심정이 느껴진다. 측은하지만 대상화되지 않았고 의례적인 관심으로 두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렇게 그가 담은 고양이들은 텅 빈 철거 현장의 외피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덧붙이는 소고: 청밀크 개인전 <Heat Island Scope>는 동작구 청년예술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첫 개인전인 만큼 청년예술인들의 성장을 돕는 사업 취지에 적합하였다. 다만 전시 경험이 적은 만큼 작업 외적인 요소-전시 디스플레이, 조명, 홍보물 구성 등-를 조직한 방식이 다소 헐거웠는데, 구체적인 멘토링 및 세밀한 피드백이 더해지면 조금 더 안정감 있는 전시 구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또한, 동작구 내 재개발 지역을 다룸으로써 지역의 다양한 이슈를 예술 언어로 심화하고자 하는 의도도 또렷하였다. 이러한 지역형 사업의 합목적성이 청년예술인의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도움이 되는지는 추후 함께 더 고민해보면 좋겠다.

[각주]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p.181, 현실문화, 2009
서울시 "동물 이주대책 법제화 어렵다", 건설경제기사 발췌,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909021359488620089, 201993일 확인
생태학에서는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생물을 핵심종이라고 한다. 인간은 더 나아가 초 핵심종, 생태계를 조정하는 슈퍼 생물 종이라 할 수 있다.; 메노 스힐트하위전, 도시에 살기 위해 진화 중입니다, p.474, 현암사, 제효영 옮김, 2019
임현정, 꼭 같이 사는 것처럼, pp. 86-87, 문학동네, 2012 

text by 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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