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18

[기고] 잉여에 대한 단상


잉여에 대한 단상
월간 페이퍼 매거진 2012.5월호 기고 
ⓒ 월간 페이퍼, 봄로야

밥, 케익, 비스켓과 스파게티가 넘친다. 커피와 와인을 가득 담는다. 먹고 남긴다. 개미들이 와서 먹는다. 바나나 껍질을 비둘기들이 콕콕 쪼고 있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바퀴를 달고 쉼없이 달린다. 집이 있고, 없고 직업이 있고 없고, 아이가 있고 없고와는 상관없이 지구상에 인간은 증식할 것이다. 나무가 크게 자란다. 잘려 A4용지가 되거나 휴지가 되거나 신문 따위가 된다. 나이테가 드러난 나무 기둥 속 뿌리는 소리없이 흙 속에서 계속 자라날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켜보는 남겨진 사람이 있다. 그 남겨진 사람을 누군가가 사랑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현상을 한 사람이 은밀하게 지켜본다. 바나나 껍질을 캔버스에 그린다. 누군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은 평생 방에서 뒹굴 거릴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껍데기가 쓰레기봉투에 담긴다. 누군가 그것을 가져가고 일부는 태워지고 또 일부는 땅 속에 묻힌다. 쓰레기봉투는 넘쳐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불필요한가. 최초의 채워짐과 최후의 비움을 누가 목격할 수나 있을까. 우주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잉여물이다. 처절하게 평화롭지 않은가.  

text & illustration by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