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18

[서문] 태양의 반대편을 쫓는 남자

태양의 반대편을 쫓는 남자
-작가 김형에 관한 에세이
2012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제6기 입주작가 공동워크숍 기고글

카메라를 들고 태양의 반대편을 쫓는 남자가 있다. 그는 어둠 한 복판에 카메라에 담을 특정 인물을 감춰둔다. 명도차가 사라져 평평해진 풍경에 놓인 인물은 오로지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섬광에서만 그 형상을 드러낸다. 동시에 인물이 들고 있는 거울은 섬광을 반사해내며 번쩍인다. 인물들이 취하는 제스처는 대부분 경직되고 무표정하다. 그로 인해 형성되는 긴장감은 나머지의 어두운 공간까지도 더욱 낯설고 두렵게 만든다. 그것은 낮이 찾아오지 않는 밤이고 그늘이며 서늘함이다.  

김 형 작가는 경험에서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고독감을 주변 인물에 투영시켜 재맥락화 해왔다. 최근 그는 <심리적 관계>(2011)와 <가족사진>(2012) 연작에서, 전작이 가진 기존의 주제는 고수하되 암흑 속 인물을 포착하는 촬영 방식으로 그 프레이밍을 달리한다. <심리적 관계>는 작가가 독일의 쾰른에 머무르며 만난 사람들로, 언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고립감이 극대화될 무렵 최초로 소통하게 된 이들이다. 알고 보니 그들 역시 폴란드에서 건너온 이방인들이었다. 작가는 온기 없는 어둠을 뚫고 우두커니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들에게서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거울을 이용하게 된 계기가 된다.          

그들은 거울을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비추어 섬광을 반사시키거나, 자기 얼굴의 여러 측면을 보이게 비춘다. 그런데 이 연출 구도는 자신을 비추곤 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다. 전자는 섬광으로 인해 카메라를 든 작가 자신이 거울에 비춰지지 않고, 후자는 그들의 시선을 카메라에 고정시켜버림으로서 거울 속 자신을 볼 수 없게 된다. 보이지 않는 거울이라는 모순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는 작가와 그들의 자아를 상실케 하고 마치 실체 없는 유령처럼 보이게 만든다. 결국 작가와 그들 사이에 성립된 어떤 ‘심리적 관계’는 유추할 수 없이 멜랑콜리아의 서늘함으로 한없이 침잠한다. 

부모님을 촬영한 <가족사진> 역시 불안과 슬픔을 가득 내포하고 있다. 텁텁한 무늬가 베어 나오는 오래된 자개농 앞에서 눈을 가린 채 거울을 들고 있거나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아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아버지,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투명한 아크릴판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상은 오롯이 작가-아들의 카메라 렌즈를 응시한다. 흑백사진이 주는 균일한 건조함은 죽은 자의 초상을 상기시킨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를 감싸는 불안감과 죽음의 느낌은 항상 가족 간의 조용한 침묵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가슴속의 말들을 끝내 털어놓지 못하고 낯선 산속에서 가족의 물품들을 데려다 기록을 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라고 말한다. 

아직 살아있는 가족을 애도하려는 이러한 역설적 행위는 <심리적 관계>에서 묻어나는 멜랑콜리아에 비해 다소 자기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공포 자체를 표현하기보다는 그 부재를 극복하려는 감정적 표출이다. 유일하게 인물이 없는 마른 고목 앞에 놓인 녹슨 철제 침대는 상실을 마주하려 애쓰는 작가적 태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또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피사체의 희미한 미소, 만개한 흰 꽃, 터지고 있는 폭죽과 같은 요소들은 어둠과 상징적으로 대치되며 미미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지금껏 작가는 어둠 속 피사체를 은밀하게 응시하며 타자를 향한 욕망을 소극적으로 보여주고, 거울과 같은 사물들을 통해 자신과 타자와의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를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던 그에게 드디어 아침을 예고하는 여명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일까.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작품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다>(2012)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최초로 그는 이 작업에서 스스로를 자신의 애인과 함께 피사체로서 담아냈다. 자신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주는 사진언어는 주변 인물에 전이시켰던 멜랑콜리아가 작가 본연의 것이었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토록 작가를 둘러싼 버석거리는 심연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는 어둠을 쫓아 타자를 감추고 드러내는 반복을 거쳐 마침내 자신을 솔직하게 표상하는 과정을 통해, 암흑 속 불안과 우울감에 점차 익숙해진 듯하다. 어둠에서 시작하여 어둠으로 끝난다. 가끔 가느다란 빛줄기가 단발성으로 그와 그의 주변을 비춘다. 언제 섬광이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찰나를 집요하게 부여잡는다. 그렇게 작가는 태양의 반대편으로 완전히 잠식하기로 선택한다.

text by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