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18

[서문]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
2016.6.22-6.30
봄로야, 윤나리, 자청, Q9, 혜원 
스페이스 ALTEREGO

일러스트레이터, 미술작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5명의 작가가 준비한 이번 전시 ≪불편한 고리들: 폭력의 예감≫은 이들의 활동명인 ‘노뉴워크(NO NEW WORK)’의 공식적인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시각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 모임’을 활동 기제로 정하기에 앞서 이 프로젝트가 생기게 된 계기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둘러싼 각자의 시선을 솔직하게 교환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 폭력의 현장은 그 어떤 사건도 획일적으로 설명되거나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윤나리 작가는 2015년 3월부터 약 1년 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성폭력, 강간, 살인, 추행, 사기, 협박 등의 기사를 모아 피해자의 감정을 일일이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피해자가 겪었을 외상과 내상에 오롯이 집중하여 검정과 파란색으로만 그려진 80여 장의 이미지들은 사건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미디어의 왜곡에 맞선다. 

비슷한 결로 봄로야 작가는 1992년 의붓아버지로부터 12년간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의 사건에 집중하였다. 작가는 당시의 신문 기사를 토대로 사건을 피해자, 언론과 여론, 경찰의 대응 등 다각도의 레이어로 나누어, 각각의 입장에서 파생된 텍스트들을 반복하여 기록한다. 기록의 끝은 피해자의 진술로 엮은 단어를 재배치하여 고통을 상징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동시에 1997년에 제정된 가정폭력 방지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프린트를 배치하여 폭력이 발생한 가정이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기록화되지 않은 사적 경험을 보임으로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속 폭력을 드러내고자 한 자청 작가는 어린 시절에 겪은 기억을 퀄트 작업으로 표현하였다. 퀄트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가 전업주부일 때 찾았던 해방구이자 억압”의 표상이다. 페미니즘 미술 작가들이 강요된 여성성의 상징이기도 한 퀄트를 작업 기법으로 응용하여 그 의미를 전복시켰듯,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응시하며 일상 속 폭력에 따른 무감과 피로를 해소한다.

Q9와 혜원 작가는 각각 ‘속담’과 ‘포르노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성적 욕망에 따른 폭력을 다루었다. 속담은 예로부터 여성이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언어체계이다. 여성에 관한 편견이 담긴 15,000여 개의 속담을 수집한 <세계여성속담사전>(미네케 스히퍼 저)에서 영감을 받은 Q9 작가의 작업은 남성중심사회의 이분법적 잣대로 폄하된 여성성을 초현실적인 모험으로 재구성하여 그래픽 노블로 제작하였다. 혜원 작가는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비판하는 방법으로서 ‘현대미술에서 재해석되는 포르노 이미지’를 고찰한다. 작가는 상품화된 여성을 신체 이미지를 비판하는 기존 작품들의 주제 의식은 분명 인정하나, 작품 속 해당 여성 주체의 성적 욕망은 표백되고 자본주의와 남성중심사회의 권력 구조로 인해 희생당한 피해자로만 고정되어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는 주제와 그 목적이 선할지라도 보는 이로 인해 성적 대상화된 인물의 주체성이 다시 타자화되는 수많은 사례를 떠오르게 한다.

오늘도 우리는 여성들이 신체적, 언어적인 폭력 앞에서 불합리함을 겪거나 심각하게는 목숨을 잃는 상황을 보고, 듣고, 경험한다. 노뉴워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할 수 있는 폭력의 민낯들을 이미지로 기록하고 드러내며 전복하는 작가적 태도를 공유하고자 한다.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될 ‘폭력의 예감’을 함께 감각하고 그 불편한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실천 지표를 찾는 과정이다.

text by 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