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2018

[기고] 답 없는 공간 : 근사한 악몽


답 없는 공간: 근사한 악몽

Z-After collective magazine Vol.2 (2018)

단어와 문장에 멋을 부리면 안 될 것 같다. 도달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 은유나 수식어구를 생각할 여유따위는 없다. 말더듬이가 되어버렸다. , , , 그러니까, , 저는, , , , 아무것도 모, 모르겠어요. 나는 간신히 그에게 내 상황을 알렸다.


얼마나 미쳤는지 계속 돌고 있어. 보이는 모든 것위에 반투명 막이 덮이고, 보일듯 말듯 나를 유혹하지. 막 위에는 공사중 표지가 세워졌어. 표지는 반복해서 신호를 보내. 빨강, 초록, 노랑, 하얀 빛이 번쩍번쩍 거리거나 바람에 방향에 따라 바람개비처럼 회전하거나 어둠 속에서 야광을 뿜어내지. 나는 그것을 계속 지켜봐. 보고 또 봐. 처음엔 투명하게 보이던 것들이, 반투명에서 하얗게 변하더니 어느새 단단하게 굳어버렸어. ,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맞아?”


 침묵으로 대응하는 시간이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주변의 시간을 훑는다. 걷기 시작한다. 땅에 떨어진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 보도블럭 사이 자라난 들풀, 전봇대를 감싸고 있는 덩쿨, 이상하게 적재된 쓰레기와 대충 만든 간판을 본다. 적당히 보고 스친다. 변두리의 널부러진 풍경엔 유행 지난 노래가 24시간 흘러 나왔다. 어느새 내 귀에 찰싹 붙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귀머거리가 되어버렸다. 더이, , 이상, 들을 수, , 수가 어, 없어, . 나는 간신히 그에게 내 상태를 알렸다.


너에게 어느새 눈이 생겼지. 구멍이야. 눈이지만 뻥 뚫려있지. 눈구멍 뒤로 하얗게 굳은 덩어리가 보여. 네가 보는 세상은 움직이고 있는데 정지되었고. 시간이 가는데 언제인지 알 수 없지. 이게 말이 돼? 너는 말을 하기 시작해.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맞지? 이런 느낌이지? 맞아?”


 우리는 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지만 숨표과 쉼표만 남은 느낌이었다. 솔직하게 말 할 수록 구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따뜻한 말투에 빨려들었다가 금새 빠져나왔다. 부드러운 그의 눈길을 피해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는 가늘고 긴 실루엣이 되었고, 풍경은 싸구려 폭죽같은 섬광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다. 더이상 그에게 나를 알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순식간에 조용한 소음이 되었다.   

*가수 김현정의 가사 인용